수용소 증언

사랑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3년 – 김수철

김수철 (요덕수용소, 1992~1995 수감) 한국방송을 듣던 진짜 반동분자 나는 국경수비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하던 중 체포되어 요덕에 수감되었다. 나는 5454부대 소속이었는데, 5454부대 5454부대는 대규모 부대였지만 김정일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해산됐다. 5454부대의 정치부장 아들이 한국방송을 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치부장은 김정일에게 매일 전화로 보고까지 하는 고위 간부였는데, 그런 그의 아들이 한국방송을 들었다는 사실을 김정일이 알고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더보기

[수기] 사진 한 장에 바뀐 운명 – 김광일 1부

중국 무역을 통해 외부세계를 접하다내가 1999년 12월 35살의 나이에 요덕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중국을 왕래하면서 있었던 일이 들통 나서였다. 내가 중국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집안의 토대가 나쁜 사람은 북한 사회에서 직업을 갖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는 토대가 중요한데, 우리 집은 워낙 토대가 나쁜 축에 속했다. 지주, 자본가, 기독교집안과 6.25 당시 월남한 가족이 있는 월남자...
더보기

[수기] 일을 너무 잘해서 잡혀가다 – 장영걸 4부

사람, 내가 요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수용소 생활은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수용소 내에서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수감자들 중에도 보위부원들의 사주를 받은 끄나풀이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보위부원들에게 보고가 들어갈 수 있다. 보위부원들은 작업반을 찾았다가 마음에 들지...
더보기

[수기] 일을 너무 잘해서 잡혀가다 – 장영걸 3부

공무동력소대장 장영걸나는 수용소에 있는 1년 동안 “공무동력소대”라는 곳에서 일을 했다. 공무동력소대에서 하는 일은 벌채, 제재(製材), 가구작업, 달구지 수리, 단야(鍛冶), 선반(旋盤) 등의 작업을 했다. 주로 벌채와 제재를 하였고 그 외의 작업은 필요할 때만 했다. 보위부원들의 가구를 만들고, 판자, 각자 등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못이나 칼, 도끼 등도 만들었다. 관과 공개총살을 위한 말뚝을 만드는 일도 우리 소대의...
더보기

[수기] 일을 너무 잘해서 잡혀가다 – 장영걸 2부

요덕으로 가는 길예심국에서 판결을 받은 뒤 나는 곧바로 국가안전보위부 7국으로 옮겨졌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나 말고 다른 이들도 함께 화물차에 타서 요덕으로 옮겨졌다. 물론 당시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화물차의 사방은 다 막혀있고, 조수석 문 옆으로 조그만 쪽문을 만들어 죄수들을 화물칸에 싣게 되어있었다. 차 문은 밖에서 잠글 수 있게 되어있고 창문이 없어서 바깥풍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보기

[수기] 일을 너무 잘해서 잡혀가다 – 장영걸 1부

1. 일을 너무 잘 했다는 죄북한에서 나의 직업은 러시아 무역성 담당자였다. 무역성 담당자로서 나는 김정일 일가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외화벌이를 했다. 당시 외화벌이 일 년 계획량은 백만 달러였다. 1994년까지 내가 근무했던 러시아 지구는 5년 이상 매년 백만 달러 넘게 외화를 벌어들이곤 했다. 매년 초과 달성을 했기 때문에 훈장도 여러 번 받는 등 외화벌이 사업자로서 나는...
더보기
1 2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