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설명

북한 정치범수용소 개관

1. 북한의 수감 시설
일반적으로 북한의 감옥은 5가지 종류가 있다. 집결소, 교양소, 노동단련대, 교화소 그리고 관리소이다. 구류장은 재판을 받기 전에 조사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구치소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구류장에서 죄질에 따라 위의 5가지 감옥 중 어느 곳으로 보내질지 결정되었다.

ㄱ. 구류장
일반적으로 구류장은 심문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써, 용의자를 조사하고 형을 결정하는 곳이다. 북한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관할하는 구류장과 사회안전부가 관할하는 구류장이 따로 있다. 그래서 보위부 구류장에서 조사받은 다음, 보위부 관할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죄일 경우, 안전부 구류장에 가서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 주로 보위부의 조사대상은 만났거나 기독교를 접했을 경우, “반혁명분자”에 해당된다.

조사 과정에서 용의자에 대한 고문과 구타는 제한 없이 가해졌다. 때때로 중국에서 임신하고 북송한 여성들에게는 강제 낙태도 있었다.
구류장에서 남자들에게 주로 행한 고문은 일면 “비둘기 고문”이다. 이것은 팔을 뒤로 묶어 기둥에 매달아 3~4시간씩 내버려 두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팔, 다리가 마비되고 피가 가슴으로 몰려 가슴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꼭 비둘기 같다고 하여 “비둘기 고문”이라 불렀다.
생활은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무릎 꿇고 앉아 있기로 움직이거나 말할 때 구타 당했다.

ㄴ. 집결소
각 도에서 집결소를 관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집결소라 불렀다.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강제 송환된 북한 주민들도 6개월 정도까지 수용했다. 그 도의 건설현장이나 농장에 동원시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다.

ㄷ. 교양소
단순 폭행이나 절도, 명예훼손 등 2년 미만의 형을 선고 받았을 때에 교양소에 수감 되었다. 때로는 정식 재판 없이 즉결심판을 통해 경범죄자들을 교양소로 보내었다.

ㄹ. 노동단련대
1990년대 김정일이 “경미한 죄에 대해서는 군 단위에서 교육하라” 는 방침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기서 ‘교육’이란 바로 ‘육체적 노동’ 을 의미한다.
그래서 15일에서 6개월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 육체적 고통을 주는 곳이기 때문에 단련대에서의 노동강도는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ㅁ. 교화소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의 감옥과도 같아서 재판을 통해 2년 이상의 형량을 선고 받은 경제사범이나 강력범들을 수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화소는 안전부에서 관리하고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관리소는 보위부가 관할했다.

 
2.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북한에서는 정치범 수용소를 일반적으로 “특별독재대상구역” 혹은 “관리소” 라 부르고, 현재 4개의 관리소와 1개의 정치범 교화소가 있을 것이다. 14호 관리소(평안남도 개천군), 15호 관리소(함경남도 요덕군), 16호 관리소(함경북도 화성군), 22호 관리소(함경북도 회령군) 그리고 25호 정치범교화소(함경북도 청진시)가 있다고 추측한다.
이 곳에는 반당, 반혁명분자 혹은 적대 계층으로 분류된 20만에서 30만의 사람들이 재판 없이 수감되어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었다.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계층들, 즉 과거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월남자 가족 출신들과 체제에 대해 비판이나 심지어 불평을 해도 정치범으로 지목되어 수용소 (관리소)에 갇히게 되었다.

ㄱ. 정치범 교화소
사회주의체제를 반대하거나 조국반역, 김일성 사상을 위반하는 행위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은 북한의 형사소송법 50조 이하 조항에 적용되어 정치범 교화소에 수감되었다. 보통 재판에서 형기는 10년 이상이며 거의 종신형에 가깝다.

ㄴ. 관리소
사회주의체제를 반대하거나 조국반역 또는 김일성 사상을 위반하는 행위를 “말”로써 비방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적법절차 없이 보내는 곳이었다.
관리소는 북한법의 테두리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보위부에서 자위적으로 혹은 제멋대로 해석하여 누구든지 체제와 김일성, 김정일을 비방했다고 관리소에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관리소는 크게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완전통제구역은 한 번 끌려가면 다시는 사회로 나올 수 없는 구역을 말한다. 보위원들은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된 사람들을 ‘완전타도대상’이라고 말을 했다. 이 곳에 수감된 수용자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만 해야 했다.

 
그리고 혁명화 구역은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과 정치범의 가족들이 수용되는 곳인데 북한의 관리소가 가지고 있는 충격적인 면모가 바로 정치범의 가족들도 수용소에 수감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연좌제’ 라고 일컫는 이 제도는 김일성이 한 말 중에 “종파 분자나 계급의 적은 그 자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그들의 종자를 3대에 걸쳐 완전히 그리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강철환씨 같은 경우도 할아버지의 죄 때문에 손자인 강철환씨가 혁명화 구역에 수감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혁명화 구역의 수감자들 중 일부는 다시 사회로 나오기도 하였다. 작업량은 김매기 350평으로 하루 600g의 강냉이 밥과 소금 국만 먹고 일해야 했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옥수수 농사를 했고 1개 반에 6,000평의 땅을 지정해 주었다.
건설분조는 주로 건강한 수감자들이 수용소 내 필요한 건물을 짓는 일을 했다.

 
참고 자료
북한정치범수용소 254명 수감자 명단
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