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증언

[수기] 일을 너무 잘해서 잡혀가다 – 장영걸 3부

공무동력소대장 장영걸

나는 수용소에 있는 1년 동안 “공무동력소대”라는 곳에서 일을 했다. 공무동력소대에서 하는 일은 벌채, 제재(製材), 가구작업, 달구지 수리, 단야(鍛冶), 선반(旋盤) 등의 작업을 했다. 주로 벌채와 제재를 하였고 그 외의 작업은 필요할 때만 했다. 보위부원들의 가구를 만들고, 판자, 각자 등을 만드는 작업을 했고 못이나 칼, 도끼 등도 만들었다. 관과 공개총살을 위한 말뚝을 만드는 일도 우리 소대의 몫이었다. 특히, 혁명화구역에서 사용되는 관과 말뚝뿐 아니라 완전통제구역에서 사용되는 관과 말뚝도 만들었다.

내가 혁명화구역에 있던 1년동안 총 2차례의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1년 동안 우리가 만든 말뚝은 총 11개였기 때문에 완전통제구역에서 사용될 말뚝도 우리가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무동력소대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만들었던 것은 관이다. 관은 거의 매일 만들었다. 죽은 사람의 체격에 따라 관의 규격이 달라졌기 때문에, 관을 보면 키가 큰 사람이 죽었는지 작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공무동력소대에서는 완전통제구역과 내가 있던 혁명화구역을 분리하는 담을 만드는 일도 했다. 대숙리 바로 옆으로 작전도로가 있었기 때문에 완전통제구역 사람들이 열을 지어 일을 하러 올라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하지만 혁명화구역과 작전도로 사이에 담을 지은 이후로는 완전통제구역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에 담을 세우기 위해 만든 판자와 못도 모두 우리가 직접 제작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혁명화구역에 있는 공동묘지는 가파르고 나무가 많은 곳에 위치해 있어, 찾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관을 들고 가기에 힘든 곳이다. 내가 공동묘지에 처음 간 날은 발전소에서 일하다 추락사한 수감자의 장례를 치른 날이었다. 처음 공동묘지를 봤을 때의 그 광경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갈뿐인 너른 땅에 제대로 된 묘비는커녕 시체의 일부가 땅 밖으로 드러난 게 태반이었고 산짐승이 먹어서 시체가 훼손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먹지도 못해 땅을 팔 힘도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무로 비석을 만들어 놓아도 땔감이 부족한 수감자들이 와서 나무 비석을 가져가 버리기 일쑤였다. 관리위원회에서도 공동묘지를 관리하지 않으니, 그저 매장하러 온 수감자들이 아무데나 빈자리에 찾아 관을 대충 묻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걸로 한 많은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묻혀버린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너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름도없이 사라진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수용소에서는 대부분 영양실조로 사망한다. 특히, 설사병에 걸리게 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설사가 나면 기름진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데, 수용소에서는 오히려 설사가 나면 기름 한 숟가락을 준다. 너무 못 먹은 나머지 생기는 설사병이기 때문이다.

어느 죽음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공개처형 되는 수감자의 죽음은 더욱 참담하다. 공개처형을 당하는 수감자는 포박 당한 채 사형장으로 끌려오는데, 손은 주머니에 넣어진 상태로 허벅지에 꿰매지고 입에는 자갈을 쑤셔 넣어서 숨만 겨우 쉴 뿐이다. 공무동력소대에서 만든 말뚝에 처형자의 머리, 가슴, 다리를 포승줄로 묶으면 보위원이 판결문을 읽는다. 왜 그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 죄목을 낱낱이 밝히는 판결문은, 있을 수 없는 죄목만을 나열한 엉터리였다. 판결문을 다 읽고 나면 형이 집행되는데, 훈련받은 저격수들이 각각의 포승줄을 명중시킨다. 머리부터 쏘는데 포승줄이 끊어지면서 머리가 앞으로 숙여진다. 그 다음에 가슴을 쏘면 포승줄이 끊어지면서 상체가 앞으로 숙여진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묶고 있는 포승줄을 쏘면 몸이 바닥에 철푸덕 쓰러지는데, 아직 신경은 살아있는지 처형당한 자의 손과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처형자의 시체는 대숙리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히지도 못한다. 보위부원들이 어딘가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난사 당한 처형자의 시체를 거적에 대충 말아서 화물차 뒤에 묶어 땅에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용소에서 경비병들은 수감자들에게 공공연히 “너희들은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지? 전쟁이 나면 우리는 제일 먼저 너희부터 다 죽이고 전쟁터로 나가게 되어 있으니,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이름도 없이 죽어가는 것, 그것이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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