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치범수용소라는곳은 어떤 곳인가?
북한의정치범수용소라고 하는 것은 어떤 곳인가?
1) 최고 지도자 김일성이나 그 아들 김정일의 이념이나 지도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사람, 체제에 불만을 토로한 사람과 그 피를 나눈 가족이, 모두, 재판도 없이 , 어느 날 갑자기 반혁명 분자(정치범)로서 넣어지는 산속의 거대한 수용 시설입니다.
체제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체제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의심을 받은 것만으로도, 수용소에 넣어집니다. 또 극히 보통 요구, 예를 들면, 일본인 아내가 일본에 귀국 하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만으로도 수용소에 넣어지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인간의 쓰레기로 간주해지기 때문에, 인간다운 취급은 일절 받지 않고, 조금만의 식사로, 하루종일 가혹한 강제 노동을 강요당합니다. 일을 시키다가 죽여도 괜찮다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 수용자의 인권, 안전, 건강등 일절 고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완전 통제 구역 정치범 본인은 다시 살아 나올 수 없는 완전 통제 구역에 넣어져 탄광 노동, 핵시설의 건설, 지하핵실험의 터널 공사 등, 위험한 노동에 종사 당합니다. 생산 공장이라고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혁명화 구역 정치범의 가족, 경도의 정치범은 막대한 돈을 쌓으면 10년 후, 수년후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혁명화 구역에 넣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이며, 실질은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구체적으로는“완전 통제 구역”로서 개천 14호, 화성 16호, 북창 18호, 회령 22호, 청진25호의 5개소. “혁명화 구역”으로서 요덕 15호, 1개소. 합계 6개소의 강제 수용소가, 현재 확인되고 있습니다.
모두 15만 내지 20만명이 수용되고 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수량은 옛날부터 변함 없습니다만, 그것은 아마 사망자는 많은데, 자꾸자꾸 보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2) 수용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술과 같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의 강제 노동입니다만, 보위원(공무원)의 명령·지시는 절대적이고, 거기에 등지면, 폭력을 받아 아주 간단하게 살해당합니다. 때리기, 차기, 체벌, 강제 노동의 연장, 강간(여성에게는) 등, 인간이 하는 모든 악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3) 어떻게 이런것을 아는가?
수용소 체험자의 수기에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9살부터 19살까지 혁명화 구역에 넣어지고 있던 강철환씨의 수기, 22호 관리소의 경비원을 하고 있던 안명철씨의 수기, 수용소에서 태어나 23살까지 살아남은 신동혁씨의 수기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언제부터 그러한 수용소는 있는가?
김일성이 개시해 패배한 한국 전쟁(1950-1953) 이후, 한국에 협력했다고 의심된 38 도선 주변의 주민이 산속으로 집단 이주를 당하고, 산속의 촌락과 같은 거대한 수용소가 서서히 만들어져 갑니다만, 김일성의 신격화가 시작되는 1967년 이후(주체 사상, 유일 사상의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1974년에는 완성했다고 합니다. “당의 유일 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 대원칙”(김정일 발안)가 발표된 해 입니다. 북한의 무서운 수용소는 김일성의 신격화와 함께 시작되어, 김일성에 반대하는 사람, 그 후계자 아들의 김정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재판도 없이 , 용서 없이 쳐넣어, 삼대에 걸쳐서 근절시키기러 하는 장소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5) 북한의 수용소는 다른 나라의 형무소와 어떻게 다른가?
북한의 산속의 강제 수용소는 앞뒤 수십 km에 걸치는 광대한 것입니다. 광대한 촌락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는 인공위성으로 파악 되고 있습니다. 28장의 선명한 사진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주위는 전기가 흘리는 유자 철선으로 둘러싸여 군대가 확실히 경비해, 부외자는 일절 접근하지 못합니다. 안에 누가 들어가 있을지도 알지 못하고, 편지 왕래도 면회도 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이 이 존재가 알려지면 부친 김일성의 위신에 상처가 난다고 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가장 무서워해 경비를 엄중하게 해 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알려져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강제 수용소인 노동 개조소는, 전국에 천개소 가까이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생산 공장의 측면을 가져, 편지 왕래도 선물을 주는것도 면회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 북한 산속의 강제 수용소는, 세계에 유례없는 잔인한 수용소입니다. 보통 나라의 형무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6) 왜 북한의 강제 수용소는 없애지 않으면 안되고 내정 간섭은 아닌가?
수용자가, 재판도 없이 넣어지고 벌거지와 같이 다루어져 그 생명과 인간의 존엄이 아주 간단하게 유린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내부의 사람들이 그 개선에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만, 일어서면, 반혁명 분자로서 가족 모두 수용소에 보내져 버리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 뿐이면, 용기가 있는 청년은 어떤 나라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동생이, 남동생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함께 수용소에 보내져 살해당한다고 하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얼마나 김일성·정일 부자가 하는 일들이 20 세기·21 세기에 있어서 잔인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 인권 선언을 구체화한 국제인권 규약(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자유권 규약)을 1981년 9월에 비준하고 있습니다. 그 제10조 제 1항에“자유를 빼앗긴 모든 사람(주: 죄수를 말함)은, 인도적으로 또 인간의 고유의 존엄을 존중해 취급된다. ”라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 조문을 완전히 유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강제 수용소는, 북한이 가입하고 있는 국제인권 규약의 이름으로 인하여 해체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편, 특히 일본의 우리가 이것에 임하는 필요성과 필연성이 있습니다. 4·50년전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10만 가까운 재일 조선인과 그 일본인 반려의 20%가 수용소에 넣어졌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본 귀국의 요구나 약속 위반에 대한 항의가 반혁명적이라고 처단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 인권 선언과 아주 비슷한 헌법에 풍족하고 있습니다만 , 북한의 사람들은 주체 사상에 물들이고 있어 인권 그 자체가어떤 것인가를 배울 기회를 완전히 빼앗기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우리가, 북한의 사람들에게, 인권 그 자체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내정 간섭이 아닙니다.
7) 왜 이러한 무서운 수용소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동안 변화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 전반에 엄네스티-본부가 움직였을 때, 통폐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은 현재의 6개소는 그대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쭉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에, 혹은 거기까지 심한 실태인 것에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재작년의 12월 16일 국제연합총회는 강제 수용소를 포함한 북한의 인권 억압의 개선 권고를 찬성 다수로 채택했습니다만, 기권으로 도는 나라도 아직 다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나라의 대표는 강제 수용소의 진짜 실태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나 집단 학살이 오늘과 같이 잘 알려져 있을 때, 그 개선 권고에 기권으로 도는 용기가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요. 일본내에서도 그렇습니다. 반 이상의 사람이 북한의 강제 수용소의 실태를 깨닫고 있으면, 더 일상적으로 화제로 될 리입니다.
8) 북한의 수용소를 없애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만,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는 강제 수용소 체험자의 수기를 읽고, 그 존재와 실태를 처음으로 알아, 분노에 떨렸습니다. 이런 심한 인권 유린과 생명 파괴가 비행기로 불과 3시간의 북한의 산속에서 이 현재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입다물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 실태를 안 것이, 우리의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과 지배자들은 철저히 그 존재를 숨겨 왔습니다. 벌써 수많은 수기가 있어, 위성 사진으로 파악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강제 수용소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강제 수용소의 실태는, 투옥되고 있던 사람의 수기, 관리인의 수기등을 읽어 주면, 거기에 수용되고 있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슬픔이 얼마나 깊고 절망적인가, 감지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